[DGK 성명] 뤼미에르 선언, 이제 창작자의 권리가 문화강국의 제도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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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7일 프랑스 생폴드방스에서 대한민국과 프랑스가 공동의장국으로 뤼미에르 서밋을 개최하였고, 이 자리에서 영화와 영상의 미래를 비롯해 인공지능과 창작자, 문화의 관계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영화와 영상의 미래에 관한 뤼미에르 선언」 및 「인공지능의 문화적 거버넌스를 위한 생폴드방스 선언」이 채택되었습니다.
이번 선언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미디어 환경 속에서 영화와 영상 창작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창작자와 영화·영상 산업의 미래를 위해 어떤 원칙과 협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국제적인 논의를 담고 있습니다.
선언문에는 반가운 문장이 많았습니다. 다양성은 경쟁력의 제약이 아니라 토대라는 것, 창작자가 작품을 긴 시간에 걸쳐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작품의 이용으로 이익을 얻는 이들이 다음 세대의 창작에 책임을 진다는 것. 우리가 오래 해온 이야기가 국제사회의 공동 언어로 적혀 있었습니다. 다만 서명자 명단에서는 오래 멈추게 됐습니다. 프랑스 쪽에서는 저작자와 실연자의 권리를 백 년 가까이 관리해온 단체들이 서명했고, 한국 쪽 서명자는 기관과 기업, 플랫폼이었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한국에는 아직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영상창작자의 권리 단체가 제도적으로 없기 때문입니다.
DGK는 그 빈자리에서 출발해 오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정부를 향한 항의가 아니라,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밝힌 원칙을 국내에서 먼저 완성하자는 제안이자, 정부가 이미 서명한 문장을 이제 법으로 옮기자는 요청입니다. 성명 한 장으로 법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논의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 기록으로 남겨두는 일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전문을 공유드립니다. 읽어보시고 의견 있으시면 언제든 주십시오. 각자의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함께 꺼내주시면 큰 힘이 되겠습니다.
[성명] 뤼미에르 선언, 이제 창작자의 권리가 문화강국의 제도가 되어야 한다
이미 세계의 관객은 한국의 창작자를 발견했다. 이제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가 그 창작자를 발견할 차례다
DGK(한국영화감독조합)은 2026년 9월 7일 프랑스 생폴드방스에서 대한민국과 프랑스가 공동의장국으로 개최한 뤼미에르 서밋과, 그 자리에서 채택된 「영화와 영상의 미래에 관한 뤼미에르 선언」 및 「인공지능의 문화적 거버넌스를 위한 생폴드방스 선언」을 환영한다.
선언문은 스스로의 자리를 이렇게 밝혔다. 최초의 사진으로부터 이백 년, 뤼미에르 형제의 첫 공개 상영으로부터 백삼십 년이 지난 지금, 영화와 영상이 비로소 세계적 거버넌스의 첫 장을 연다고.
빛의 이름을 가진 선언이다. 그러나 빛은 스크린에 닿기 전까지 아무것도 아니다. 영사기에서 나온 빛이 스크린을 만나야 형상이 되듯, 선언의 언어도 한 나라의 법과 제도를 만나야 비로소 사람의 삶을 바꾼다. 우리는 그 스크린에 대해 말하려 한다.
명단이 비춘 것
두 선언의 서명자 명단은 한국 영화계가 오래 미뤄둔 질문 하나를 정확히 비춘다.
프랑스 쪽에서 서명한 이름들 가운데에는 SACD와 SACEM, ADAMI, 그리고 국제저작권관리단체연맹 CISAC이 있다. 저작자와 실연자의 권리를 한 세기 가까이 관리해온 단체들이다. 한국 쪽 서명자는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산국제영화제, 그리고 CJ ENM과 CJ그룹, NAVER, NEXON Korea, SLL, TVING이다. 기관과 기업, 그리고 플랫폼이다.
그 자리에 한국 창작자의 이름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개인 자격 서명자 명단에 정주리 감독의 이름이 올라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이름과 한 제도의 이름은 다르다.
이것은 누구의 태만도 아니다. 한국에는 아직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영상창작자의 권리 단체가 제도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명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서명할 자리가 우리에게 없었다.
세계로 뻗어나간 K-콘텐츠, 창작자의 권리는 어디에 있는가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는 이제 세계 어디에서도 주변의 문화가 아니다. 언어와 국경을 넘어 사람들의 감정과 상상력에 닿는다. 그 성취를 우리는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한 가지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세계적인 콘텐츠 강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은, 그 콘텐츠를 만든 창작자의 권리에 있어서도 과연 문화강국인가.
현행 저작권법 제100조는 영상저작물의 제작에 참여한 감독이나 작가가 저작권을 갖고 있더라도, 별도의 특약이 없으면 그 이용에 필요한 권리는 영상제작자에게 양도된 것으로 추정한다. 영상저작물의 원활한 이용을 위해 마련된 장치였다. 하지만 방송과 OTT, 해외 유통이 작품의 수명을 무한히 늘려놓은 오늘의 환경에서, 이 추정은 감독과 작가를 자기 작품의 지속적인 이용에서 조용히 분리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게다가 우리 법은 영상저작물의 저작자가 누구인지조차 명확히 정의하지 않는다. 음악의 작곡가와 작사가는 자신의 노래가 방송되고 공연되고 전송될 때마다 그 이용에 따른 정당한 몫을 돌려받는다. 같은 나라, 같은 법 아래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만든 감독과 작가에게는 그 통로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국제적인 격차를 비교하기에 앞서, 우리 안에서도 이미 큰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면 이름들이 올라간다. 그 이름들은 작품이 세계 어디에서 몇 번이나 다시 상영되더라도 그대로 남는다. 다만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을 뿐이다.
보상받지 못한 창작은 갱신되지 않는다
뤼미에르 선언 제3항은 창작자와 제작자가 작품을 긴 시간에 걸쳐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창작 갱신의 조건으로 규정하고, 작품의 방영과 배급, 이용에서 이익을 얻는 이들이 다음 세대의 창작을 뒷받침할 책임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함께 진다고 밝혔다.
제9항에는 더 짧고 단단한 문장이 있다. 창작이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면 그것은 갱신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불법복제를 겨냥해 쓰였다. 그러나 문장 자체는 훨씬 멀리 간다. 창작이 갱신되지 못하는 것은 해적판 앞에서만이 아니다. 합법적인 유통 안에서도, 정당한 보상이 없으면 창작은 똑같이 갱신되지 않는다.
창작자의 권리와 산업의 성장은 대립하지 않는다. 창작자가 작품의 성과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받고, 그 보상이 다음 작품을 준비할 시간과 생활을 지탱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다음 작품이 다시 산업의 자산이 되는 순환. 그것이 지속가능한 문화산업이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은 이미 만들어진 몫을 나누자는 요구가 아니다. 다음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창작의 기반에 다시 투자하는 일이다.
정부는 2027년부터 2031년까지 5억 유로, 약 8천억 원을 영화·영상산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환영한다. 다만 우리는 묻는다. 그 재원이 제작과 자본으로만 흐르고 창작자의 권리에는 단 한 줄의 법 조문도 남기지 않는다면, 5년 뒤 우리에게 남는 것은 더 많은 작품과 더 지친 사람들일 것이다. 예산은 회계연도와 함께 끝나지만 제도는 다음 세대까지 간다.
AI 시대, 이미 서명한 문장을 이행할 차례다
인공지능은 창작과 혁신의 가능성을 넓힐 수 있다. 우리는 기술을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창작을 중심에 둔다는 원칙은 창작의 사실을 존중하는 데서 끝날 수 없다. 창작물의 학습과 이용, 재이용으로 경제적 가치가 발생할 때 창작자가 그 가치와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생폴드방스 선언」 제II원칙은 인간이 만든 작품이 생성형 인공지능의 품질과 풍부함이 기대고 있는 토대임을 확인하면서, 보호저작물을 학습에 이용하는 일과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하는 일이 지식재산권을 존중하고 권리자에 대한 공정한 보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명시했다. 제IV원칙은 각국이 인간이 만든 작품의 가시성과 정당한 보상을 보장하도록 공공정책을 조정할 것을 권장했다. 제III원칙은 학습데이터의 구성과 출처에 대한 투명성, 그리고 권리자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추적가능성을 요구했다.
대한민국은 이 문장들에 서명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영상창작자가 그 보상을 청구할 근거 자체가 아직 없다. 존재하지 않는 권리에는 보상도, 투명성도, 추적가능성도 발생하지 않는다. AI 기업에는 학습할 작품이 필요하고, 플랫폼에는 서비스할 작품이 필요하며, 극장에는 상영할 영화가 필요하다. 그 모든 것의 시작에는 창작자가 있다. 창작자의 권리는 산업이 성장한 뒤에 나누어야 할 비용이 아니라, 문화산업을 가능하게 하는 최초의 자본이다.
선언을 국내 제도로 이어가야 한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정부와 국회에 다음의 제도 정비를 촉구한다.
첫째, 영상저작자의 지위를 법으로 명확히 하고 사후보상권을 제도화하라. 감독과 각본가 등 영상저작물의 핵심 창작자가 저작자임을 법에 분명히 하고, 영상저작물의 안정적 이용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작품의 지속적 이용 성과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저작권법 제100조의 보완과 사후보상권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
둘째, 이용·수익 정보의 투명성과 계약상 보호장치를 마련하라. 창작자가 보상 산정의 기초가 되는 이용 내역과 수익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협상력의 차이로 보상에 관한 권리가 계약 한 줄에 형해화되지 않도록 정보제공 의무와 계약상 보호장치를 함께 갖춰야 한다.
셋째, 국내외 이용에 대응하는 징수·분배 기반을 갖춰라. 국경을 넘어 유통되는 한국 작품의 권리가 실제 보상으로 이어지도록, 영상창작자 권리의 집중관리와 국제 협력·징수·분배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이번 선언에 서명한 자리에 한국의 영상창작자 단체가 설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넷째, 생폴드방스 선언의 AI 원칙을 국내 기준으로 이행하라. 학습과 생성 과정에서 인간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동의와 보상, 학습데이터의 투명성과 추적가능성이 실제로 작동하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 문서에 서명한 원칙과 국내에 적용되는 규범이 서로 다를 수는 없다.
문화강국의 다음 정의
혹자는 규칙과 권리를 산업에의 부담으로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프랑스가 문화정책으로 국제적 존중을 받는 이유는 영화를 많이 지원해서가 아니다. 창작자의 독립과 권리를 법과 제도의 일부로 만들었기 때문이고, 그 규칙이 있었기에 창작의 자유와 다양성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규칙이 자유를 좁힌 것이 아니라, 규칙이 자유를 가능하게 했다.
이는 특정 직군의 이익을 위한 요구가 아니다. 세계가 한국의 창작물을 발견한 지금, 그 창작자가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권리와 시간을 보장하는 일이며, 대한민국 문화산업의 다음 백 년을 위한 기반을 놓는 일이다.
문화강국은 세계적인 작품을 많이 보유한 나라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의 권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존중하는 나라가 진정한 문화강국이다.
이미 세계의 관객은 한국의 창작자를 발견했다. 이제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가 그 창작자를 발견할 차례다.
뤼미에르 선언의 빛이 선언문 위에 머물지 않고, 예산이 되고, 제도가 되고, 계약이 되고, 극장의 스크린이 되고, 창작자의 다음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9월 14일
DGK(한국영화감독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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